[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증 이야기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3/02/14 14:49

증 이야기

‘증(症)’이라는 말이 붙으면 병과 관련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확하게는 병이라기보다는 병을 앓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상태나 모양 등을 나타냅니다.(표준국어대사전) 그러니까 병이 아니어도 증이 붙을 수도 있고, 병의 증세니까 병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어지럼증도 그런 단어일 겁니다. 우울증이나 어지럼증은 여러 병의 증세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도 병인 느낌이 있습니다. 사실은 매우 심각한 병일 수도 있는 증세입니다.

한편 ‘의처증(疑妻症)’이나 ‘의부증(疑夫症)’ 같은 요사스런 증세도 있습니다. 이상하고 위험한 증세입니다. 걸핏하면 화를 내는 ‘화증(火症)’도 생각해 보면 병입니다. 그래서 ‘화병(火炳)’이라고도 했을 겁니다. 화병은 한자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몸과 마음속에서 불이 나는 겁니다. 비슷한 증세로는 짜증도 있습니다. 짜증은 늘 일어나는 증세는 아니지만 짜증이 일어나는 순간 어느 병보다도 전염성이 강합니다. 무서운 병이지요.

저는 짜증의 어원을 ‘짜다’에서 온 걸로 봅니다. 자신을 쥐어짜는 병이고, 마음속에 남의 자리를 없애는 병입니다. 짜증은 얼굴에도 나타납니다. 얼굴을 쥐어짜면 인상을 쓰는 것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짜증은 치유가 가능합니다. 얼굴을 그저 펴면 됩니다. 짜증이 날 때마다 살짝 웃어보는 것은 치료의 명약입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웃음 띤 내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도 얼굴이 펴집니다. 전염이 사라지는 겁니다.  

짜증처럼 용언의 어간에 증이 붙는 구성의 어휘로는 ‘싫증’이 있습니다. 싫증은 사전에서 ‘싫은 생각이나 느낌 또는 그런 반응’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염증(厭症)’이라는 한자어의 고유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염증의 염은 싫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싫증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왠지 부족한 느낌입니다. 싫증은 처음부터 싫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래 갖고 있어서, 자주 보아서 생긴 감정입니다. 신물이 난다고도 하고 식상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말입니다.  

싫증 역시 치유가 가능한 병입니다. 잠깐 거리를 두거나 새로움을 찾으려 노력을 하다 보면 싫증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오히려 싫증이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재탄생합니다. 익숙함과 편안함은 싫증의 다른 모습입니다. 짜증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는 귀했던 것인데 귀함을 잊어버리면 짜증이 나는 겁니다. 그럴 때 쓰는 말이 ‘귀찮다’입니다. 귀찮다는 ‘귀하지 않다’가 줄어든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까이 와도 귀찮아서 밀어내게 됩니다. 말에도 가시가 돋습니다. 싫증과 짜증은 하루라도 빨리 치유해야 하는 증세입니다.  

수많은 증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희망이 되는 증도 있습니다. 바로 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이라고 이름 붙인 ‘궁금증’입니다. 이런 병이라면 앓아도 될 듯합니다. 인류의 발전은 궁금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자어로는 호기심이라고 하죠. 호기심은 기이하고 이상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나와 다른 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눈이 반짝입니다.

궁금증은 아는 게 많을수록 커지는 병입니다. 병이 자라납니다. 병이 깊어질수록 배움의 깊이와 넓이도 달라집니다. 증세가 자라나서 기쁜 병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오늘의 ‘증 이야기’ 역시 궁금증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한참 동안 증과 병의 차이점을 생각하다가 생각이 꼬리를 문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